2020

유월이 되기 전에

believe.in.the.best 2020. 5. 29. 23:18

 

 

 

 

*

프로포절-논문 계획서-을 제출했다.

제출 직전에는 항상 이상한 불안감이 들어서

어제 저녁에 메일을 보내고나서도

내가 마감을 잘못 알고 있었으면 어떻게 하지,

괜찮을까, 라는 식의 불필요한 걱정을 자꾸 했는데

아침에 사무실에서 확인 연락을 받고 마음을 놓았다.

 

그리고, 이번 달을 넘기지 않고 써야겠다고 생각한 또 하나의 글을 쓴다.

 

*

한 달 쯤 전에, 무언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상태로 발버둥 치면 깊이 빠져서 헤어 나오지 못할 것 같았다.

그래서 발을 빼고 뒤로 물러나봤다.

 

처음에는 그게 늪 같은 건 줄 알았는데

가만히 살펴보니 굉장히 푸석푸석했다.

밀푀유나 웨하스같이 여러 층이 겹겹이 쌓여있는데

그 사이사이가 비어있다.

 

그러니까 내가 본 것들은 이것저것 많이 있는데,
그것들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채

해석 위에 해석을 쌓아 올리고 있는 것 같이 느껴졌다.

그래서 불확실한 것들은 비워내고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것들만 남겨두기로 했다.

그랬더니 내가 아는 것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

어쩌면 내가 가지고있던
변하지 않는 생각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글은 시차가 있다.

쓰여진 것이 언젠가 전해질 수 있다고 하는 건 가능성이고

언제 전해질 지 모른다는 건 한계다.

 

그리고, 글은 해석의 여지를 남긴다.

자기가 쓴 것이 의도한 바와 다르게 읽힐 수 있다.

그것이 묘미라고 한다면 묘미이겠다만,

지난달의 내게 있어서 그것은 놀랍다 못해 충격적이기까지 했다.

나만 그렇게 느끼는 건 아닐 것도 같다.

 

글의 이러한 양면성 중 어느 쪽을 믿을지는

때와 상황, 입장에 따라 달라질 것 같다.

 

다만, 나는 글로는 전할 수 없는 이야기가 있다고 생각한다.

언제 전해질 지 모른다거나

그 의미의 해석을 상대에게 맡겨서는 안되는

중요한 이야기가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과 마찬가지로 그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던 2월의 나에게는

글로는 전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 것과

글이 아니면 전할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이 있었다.

그래서 한 번은 글이 아닌 다른 방법을 택했고,
한 번은 글의 가능성에 걸었다.

 

*

이 글을 쓰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

쓰여질 수 없는 것에 대해 써야하는 것인지 고민했다.

하지만 왠지 작자보다 독자가 더 성실해서 생긴 오해인 것 같아서

한 번 더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무언가에 끌릴 때,

대개 대상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함께한다.

연구를 할 때도, 그런 오만함을 가지고 시작한다.

그리고 곧 내가 아는 건 거의 없었다는 것을 발견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에 이끌린 그 느낌이 무엇이었는지 이유를 알게된다.

 

지금의 나는 역시 아는 게 별로 없다.

하지만 내 마음이 변하지 않았다는 걸 안다.
그래서 그 이유를 알고 싶다.

 내가 이 길을 걸으면서,

이 풍경을 보면서 떠올리는 이가

과거에 무엇을 한 건지 보다도, 

어떠한 생각과 마음을 가지고 있었는지, 

지금은 어떠한지를 알고 싶다.
그리고 그건
나 혼자서는 할 수 없다는 걸 안다.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까?

 

지금 나는 또 다시
내가 늦지는 않았을까 싶어서 불안해지지만

이게 내가 써야했던 또 하나의 프로포절-제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