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2.23
0.
선로 앞에서 떨어질 것 같은 아저씨가 있었다.
술에 취해 앞 뒤로 또 양 옆으로 마구 흐트러져서
내 눈 앞에서 사람이 떨어지는 걸 목격하는 상상이 머릿속에 스쳐지나갔다
불안하다 싶어, 전철이 어느 역까지 왔는지 전광판을 보던 사이
내 앞에 서있던 사람들이 옆 쪽 칸 줄로 자리를 옮겼다.
1.
이전에 비슷한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정확하게 말하면 내가 직접 기사를 읽은 건 아니지만
그러한 뉴스가 있다고 했을 때 떠오른
눈이 소복하게 쌓인 도시의 거리 풍경이 머릿속에서 잊혀지지 않았다.
어느 한 아저씨, 노인에 가까울 지도 모르는 연령의 남성이 겨울 눈길에 쓰러져있었다.
한 시간 정도의 시간이 지나도록,
아무도 그를 위해 의식을 확인하지도 구급차를 부르지도 않았다.
그는 그렇게 차갑게 숨졌다.
아마 한국의 서울역 부근의 일이었을 걸로, 어설프게 기억하고 있지만
아시아의 어느 곳의 이야기였을 거다.
나에게 있어서 그렇게 감정적으로 멀지 않은 곳의 이야기였고
우리가 사는 곳이 메말라간다는 어느 한 가지의 이야기로서,
흩날리듯 지나갔다.
2.
자리를 옮기지 않고 내 앞에 서 있던 검은 옷의 아저씨와 한 학생도
시야 안으로 전철이 들어오자 그 아저씨를 옆눈으로 쳐다보고 있었고
자세와 선 위치가 조금 흔들렸다
하지만 전철이 바로 앞으로 다가오는 때에도
아무도 손을 내미는 사람은 없었다
그래도 여기서 내가 느낀 바가 아니라 그 둘의 입장에 대해 호의적으로 생각한다면
전철이 꽤나 천천히 플랫폼으로 들어오고 있었고,
아마도 고꾸라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일 지 모른다.
둘 다 성인 남자였고 잡아끄는 힘이 있을 지 자신없는 나보다는 조금 더 행동에 옮기는 시간이 짧아도 되었을 지도 모른다.
왼쪽 아저씨에게 내가 위험하지 않나요?라고 말을 걸었을 때,
단어가 아닌 음성으로 대답한 그 사람이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은 애매한 얼굴을 하고 있기에
휘청거리는 아저씨의 회색 옷을 붙들었다.
위험하지 않아요? 라고 말하자 그 순간에는 동공이 제대로 날 쳐다봤다.
그러고는 같은 전철에 올라탔다.
3.
그대로 자리에 앉아 널부러져있는 아저씨와 그 마주편에 앉은 검은 옷의 남성.
무언가 석연치 않고 언짢았다.
아니, 점점 화가 났다.
이유는 아마 이러하겠지, 다들 무슨 일이 일어날 지에 대한 생각을 하느라 움직이지 못했을 것이다.
술에 취한 사람을 괜히 저지하다가 욕설을 들을 수도 있고
해코지할 지도 모른다거나, 쓰러지면 뒷처리 등에 자기 시간과 노력과 기분이 상할 수 있겠지.
근데 그런 가능성들 때문에 한 사람이 죽을 지도 모른다는,
앞으로의 가능성이 0이 되어버린다면.
일어나지 않은 일들을 더 우선시 하는 것인가,
자신의 예측 혹은 억측은 눈 앞의 일에 대한 판단력을 이렇게 저지하는가,
그러한 지나친 염려는 적어도 한국에서는 보지 않을 것 같았다.
무언가 실망스러웠을 때
그 이유를 일본에 있어서인 지도 모른다고 오랜만에 생각한 순간이었다.
4.
그러다 문득 서 선생님과의 대화를 떠올렸다.
한국과 일본 어느 쪽이 더 지내기 편하냐고 하시기에
생활은 일본이라 대답했다.
한국에서는 고등학교까지의 인간관계가 주되고, 그 이후 알게 된 사람들은 여기에 많은 것도 그러했다.
선생님이 보시기에 나는 다른 사람을 제치고서까지 자기 주장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니게 보이니
그러한 성향에 대한 얘기도 나왔다.
말씀하신 것처럼, 어릴 때에는 그러한 것들이 소위 말하는 '국민성'인가 하는 생각으로 이어지고
마침 엄마가 일본 사람이어서 그러면 이 쪽에 가까울까 싶어 일본으로 흘러들어왔다고 대답했다.
다른 유학생들보다는 일본에서의 인간관계에 대해 그렇게까지 많이 마음을 소모하지는 않았지만
와보니 이것도 뭔가 아닌 것 같았다.
5.
길에 넘어진, 얼마 전 내 지인이 그랬듯이 단지 허리가 삐끗해서 움직이지 못하게 되었을 수도 있는데
결과적으로 생명을 잃은 그의 이야기가 어느 나라에서 일어난 일이지 찾아보지 않은 이유는 이 때문이다.
굳이 한국은 더 정이 많아서 좋고, 일본은 차갑다 말하고 싶은 게 아니다.
딱히 크리스마스여서는 아니었지만
자신에게 한 가지 말을 걸어보라고 하기에
어디서 불쑥 튀어나왔는지 알 수 없는 마음으로
사람을 사랑하자,는 말을 되뇌인 후의 귀가길이었다.
그런데 내일이 크리스마스 이브라고 하더라.
세간은 괜히 붕 뜬 분위기일 거라 생각했고, 그 생각을 배반할 여지도 없이 세일을 하고 있었다.
같은 전철을 타기 위해 오는 사람들은 이리저리 쇼핑백이나 비닐을 잔뜩 들고 있었고,
슈퍼의 조리음식 코너에도, 무언가라도 끼워맞추기 위해서
혹은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조금이라도 외로움을 덜어주기 위한 것인지
그도 아니면 이렇게라도 조금이나마 장사를 해보려는 건지
바코드 위에 메리크리스마스라 멋없는 글씨가 적혀있었다.
로스트 치킨은 미처 다 팔리지 못해 식은 채 덩그러니 남겨져있었다.
기독교 신자인 H는 한국보다도 더 신앙심과는 동떨어진 일본의 크리스마스 장식에 납득하지 못하고 있다 말했다.
신앙심과는 관련이 없기에 어릴 때부터 산타의 선물을 받은 적이 없다고 했었던 것 같은,
하지만 같이 일루미네이션을 보러 매년 광화문을 걸어다녔던 M을 떠올렸다.
그러한 추억을 마음 속에서 같이 간직하고 있으면서도,
원전사고 이후 거리의 전구들이 빛나는 걸 보면 사람들의 '사소한' 기쁨을 위해 존재하는 원자력발전소와 그 곳의 사람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게 된 나 자신이 있다.
서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K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러 온, 랩핑을 기다리는 대기 손님을 하도 불러대서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했다.
크리스마스가 어떤 날이든지, 적어도 나에게는 상관 없다.
다만 따뜻했으면 좋겠다.
사람들이, 사람들의 마음이 자신만을 생각하는 게 아니고
외로움을 피하려 안간힘 쓰지 않아도 되는 날이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