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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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개의 마음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태어나고 나서 정신을 차려보면
저마다 알맹이를 품고 있다.
다른 이들이 입을 벌리고 있는 걸 볼 기회가 도통 없으니
누구 것이 더 크고 더 작은지,
누가 가진 개수가 더 많고 적은지는 알 수 없지만,
모두들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걸 아파하고 아파하고 또 아파하면서도 뱉어내지를 않고 품고 있는다.
체액을 입혀서 진주를 만드는 시간이다.
고통스러움에 미간을 찌뿌리고, 그렇게 점점 아픔의 깊이가 패여가다가
어느 날 빡,하고 두동강 나면 모든 게 끝이 난다.
그러니까, 진주가 만들어졌거나 그 전에 죽거나 둘 중 하나다.
껍질이 열리는 날이다.
*
그런 생각을 자꾸 한다.
나는 그런 것들을 많이 품고 있었다.
내가 살아온 시간은, 주변에 한 눈 팔 만한 것이 없는 적막한 공간 속에서 그렇게 만들어졌다.
대학원에 입학했을 때,
당시 학교 총장은 “죽을 만큼 공부해라”라고 말하였지만
내가 들어온 연구과에서는 “입원入院을 축하한다”라고 했다.
그 때의 나는 알 지 못했지만,
치료 혹은 치유의 장에 들어섰던 건지도 모른다.
어찌되었건 이런 곳으로 흘러들어와버렸기 때문에
나는 저 아픈 알맹이를 연구라는 방법으로 뱉어내려고 했다.
작품을 보고 혼자 앓고 또 감정소모를 하고있자니
알아주지 않는 대상을 계속해서 짝사랑 하는 것만 같고,
논문이 마치 고백을 위한 기나긴 문장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게 힘들었다.
그리고, 스스로 너무 많이 힘들어지면
자기 아픔에 벅차서 다른 이의 아픔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심성이 뒤틀려버리고 모든 것을 이상하게 해석하기 시작한다.
석사과정을 마치고 대학원을 수료-그것은 과연 퇴원을 의미했을까-한 어떤 이는
자신의 상황에 대한 비관이 팽창해서 눈 앞에 있는 나를 없는 것처럼 치부해버리기도 했었다.
사실, 그것은 모두가 빠질 수 있는 상황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나는 그러한 상태를 벗어나고 싶다.
진주는 하나면 된다.
혼자 끙끙앓으면서 보석을 만들어내는,
양식장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한 몸부림은 연구만으로 충분하다.
앞으로는 이것도 유사 연애감정이 아니라 좀 더 안정된 온도를 유지하며 진행시켜보고싶다.
그리고 사람을 좋아할 때는
그런 미어지는 마음으로 홀로 고통스러워하는 게 아니라,
아픔을 참지 않고 서로에게 바로 말할 수 있는 사이였으면 좋겠다.
나중에서야 불쑥 보석을 건네는 게 아니라,
주고 싶은 것을 지체하지 않고 주고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상대에게 알맹이를 심어주는 게 아니라,
서로의 아픔을 바라보면서 돌봐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조개의 시간으로 사람을 사랑하면
살아가는 게 너무 힘들고 지칠테니까.
그랬을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