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2020.03.14

believe.in.the.best 2020. 3. 15. 02:11

 

 

0.
눈이 펑펑 왔다.

빗소리에 잠이 깼는데 창밖을 보니 어느새 하얘져있었다.

기온이 따뜻한 날이 빨리 찾아와서
학교 안에는 이미 벚꽃이 피기 시작한 나무도 있었는데
오늘의 차가움의 무게들을 잘 버텨줬을까.

1.
시간이 있는 것 같다.
이렇게 생각하는 시기는 대개 함정이 있다.
오히려 계속 이것 저것 손을 대고
마음 편히 쉬지 못한다.

그래도 오늘은 집에서만 있으면서
하기 귀찮아서 미뤄두고 있던 것들에도 손을 댔다.
이번 주말은 이것 저것 스케쥴링 하지 않고
그냥 별생각없이 움직여야겠다고 생각했으니
이것만으로 충분히 잘한 날이다.

그런데 막판에 발견한 메세지에 꽤나 마음이 상했다.
얼굴도 모르고 이름도 모르는 사람이
나의 어떤 행동에 대해 자신이 느낀 감정을 날이 선 말로 적어놓았기에.
어떤 상황이 배후에 있었는지도 모른 채
자신이 느낀 것만 가지고 모난 표현을 써도 되는 걸까 싶어졌다.
그러면서 사람과의 관계에서 예의를 지킨다는 게 무엇인지,
관계성에 따라 어쩌면 너무도 다른 명암을 가지는 그것에 대해
머리로만 생각하기엔 참 난해하다고 느꼈다.

그 후에 갑자기 재작년 여름에 상하이에 갔을 때의 헤프닝을 떠올리거나
내가 사는 이유가 무엇인지 자문을 시작하는 이상한 비약이 일어났는데,
이건 아마 바이오리듬의 변화 때문에
내 안의 감정이 엉뚱한 생각의 미로로 흘러간 듯 하다.

그나저나 연예인들은 이런 일들의 연속일텐데 어떻게 버텨내며 사는 걸까.
뭔가 그들 안의 촛불이 위태롭게 흔들리는 모습이 떠올라서 괜스레 안쓰러워지면서도,
되도록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살아가는 게 내 정신 위생상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하고 만다.
그것이 무난한 삶을 의미하는 지는 모르겠지만.


2.
연구회 사람들과 함께 학술 대회의 발표 신청서를 제출했다.
오키나와 문학과 재일조선인 문학을 연구하는 대학원 사람들과 함께 패널을 구성해서
몇 번씩 상의를 거듭하고 요지를 적어서 냈다.
이들이 하는 연구에 관심이 있으면서도 제대로 공부하지는 못했었는데,
(혹은 안했었는데) 이번 기회로 여러모로 많이 배울 수 있을 것 같아서 기쁘다.

이제까지는 우연하게도 한국과 중국, 일본에서 개최된 대회들에 참가했었는데,
이번 신청이 통과되면 또 다른 곳에도 가볼 수 있게 되니 기대가 된다.

아, 상하이를 떠올린 건 이 생각에서 비롯된 모양이네.

3.
감정 일기라는 게 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오, 그렇구나 라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그걸 따라서 해본 적은 아직 없다.
동생이 감정 단어 리스트라는 걸 보내줬는데
거기에 적힌 단어들이 참 다양했다.

나는 내 안의 감정들의 이름이 무엇인지 알고 있을까.
의도적으로 그것들의 그라데이션에 머물며
이름을 붙이지 않는 쪽에 가까웠을 것 같은데.
그건 스스로가 좋고 싫음이 분명한 사람이라고 여겼기에
되도록 금방 단정 짓지 않으려고 해서였다.
하지만, 바란다는 것과 기대하는 것의 차이에 대해서는
좀 더 명확하게 인지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기대는 기다림이라는 의미를 내포하는 모양이다.
무언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어내고 싶다는 생각이
혹여 그렇게 되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 걱정하는 두려움이 느껴진다.
이 단어의 노란 빛이 애써 감추려 하는 배반당할 지도 모른다는 이면의 그림자가 자욱하다.

4.
어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응당 도전해야한다고 여기고 그것들에 임해오면서
“이렇게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것들과 그 마음이
“이렇게 되어야한다”라고 굳어지면
내 안의 바람이 기대로 치환되버렸던 건 아닌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떤 의미에서는 일방적으로 평가를 받는 응모자의 입장이었을 때,
너무 힘들어서 괴로워했던 때를 아직도 종종 떠올린다.
그렇게 되지 않으면 안된다며
다른 선택지는 없다는 생각으로,
그러니까 그것은 사실이 아닌 생각으로,
타인의 기대에 대해 부응하는 것이 아니라
실은 나 자신의 기대가 차올라서 숨이 통하지 않게 되었던 때를.

지금도 그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건 아니지만,
그것이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 일으킨다는 걸 겪기도 하고,
그렇지 않아도 다른 기회나 방법이 있다는 게 점차 시야에 들어오면서,
무엇보다도 그러면서 허비한 시간에 대한
통렬하고 꺼림칙한 마음의 부채로 인해서,
이제는 이전과는 조금 다른 방향을 향해 몸을 돌렸다.

이 부채는 얼버무릴 대상이 아니라
그것을 떠올릴 때마다 다시 되풀이하지 않겠다고 의식함으로써 갚아가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더이상 순환하지 않게 되서 생명력을 잃은 이유로 스스로를 괴롭히면 안된다.

5.
제도권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는 이상,
이러한 측면이 내가 자신에게 짐을 지우지 않도록 노력해야하는 것들 중 하나일 지도 모르겠다고 여긴다.
그러면서도 일방적으로 정해지지 않은 관계에서도
기대를 바람으로 돌려놓는, 그것들의 관계를 좀 더 유기적으로 바꿔가는
다른 시도가 일어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관료주의 같이 형식적으로 끊어내고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느끼는 것을 전하고 이야기한다는 용기와
시시비비를 따지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상대의 입장에 대해 이해하려고 하는 노력과
그것이 단지 누군가의 기대와 판단에 걸린 게 아니라 함께 조정해가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태도.
어려운 일이지만, 중요한 관계일수록 그렇게 마주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한, 기대가 아닌 바람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