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2021.02.05

believe.in.the.best 2021. 2. 6. 01:06

 

*

우유 빛깔 미래.

불투명하다 못해 아무 것도 보이지 않지만

백지같은 그것에는 무엇이든 그려낼 수 있다,

그렇게도 말할 수 있겠지.

친구와의 대화에서 막연함을 익살스럽게 바꿔보려고 이 말을 썼던 것 같지만,

지금은 양극에 있는 의미를 모두 포괄하는 이런 표현이 얄궂게도 느껴진다.

 

사람들은 곧잘 글을 쓰는 행위가 인간이 다른 동물과는 다른 고유한 특성인 듯 말하지만,

사실 그것보다는 비유를 구사한다는 점이 더 고유한 점이지 않을까 싶다.

겪어보지 못한 일도 마치 겪어본 것처럼 쓰고,

또 느끼게 하는 그런 능력.

 

다만, 그것이 어떠한 우열을 가려내는 특징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대개의 능력이 그러하듯, 때와 상황에 따라 잘 쓰면 좋은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그렇지는 못할 것이다.

 

*

사는 것이 쉽다고 느낀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지만

살아가는 게 쉽지 않아서.

그냥 본디 그러한 것이라고 받아들이면,

좀 더 그렇게 살아보면 편해질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덤덤히 하지만 무던히 하루하루의 나 자신의 과제들과 마주하고 있었다.

 

살면서 찾아오는 상황 속에서

반복적인, 유사한 곤란함을 발견한다면

그건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있어서 그런 것이고,

그건 다른 누군가가 아닌 스스로가 해결해야 하는 종류의 것이다.

아마 나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각기 그러한 것들을 안고 살아가고 있겠지.

요행을 부리고 싶어도 정공법으로 마주해야하는 것들을,

그런 종류의 묵직한 것들을.

 

어쩌다보니, 아니 이것이 나의 때(時)였기 때문에,

일 년 정도 그것들을 회피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뛰어들어봤다.

그러고나니. 내 자신의 굽혀서는 안 될 주관과 아집 혹은 고집의 차이에 대해서 알아가게 되었다.

그리고 경기장 혹은 무대에 서있는 나,

더불어 그걸 보면서 비평하는 내가 아니라,

관객이 되어서 바라보는 나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나를 가만히 지켜봐주는 나. 조금 떨어져서 물끄러미 바라봐주는 나.

어쩌면 '객(客)'관적인 나를 좀 더 인식하게 된 건지도 모른다.

일 년 동안, 나의 경우는 그랬다.

 

*

일주일 후인 오늘을 앞두고

나는 아직 무언가를 회상할 겨를없이

좀 더 차분해지려고 의식하면서 지내는 것이 고작이지만.

 

요즘은 말을 할 기회가 없어서인지 말도 잘 안 나오는 것 같고,

글도 도무지 써지질 않았지만,

화면 앞에 멈춰서 앉아있다.

 

그건, 아마도 그렇겠지라고 생각해왔던 것이

아마도 그러했다는 걸 알아서인지도 모른다.

다만, 두 번 반복해서 쓴 저 단어의 의미까지 적는 건,

오늘 나의 몫을 넘어선 첨언인 것 같아서 접어두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