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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비상구

believe.in.the.best 2019. 10. 9. 21:35

 

 

 

*

"언제든지 그만둘 수 있다는 생각이 있으면 된다",
그 말을 적었었지.
최근 떠올렸다.
그저께, 동네잡기 블로그에 적어놓았던 걸 우연히 발견하니
그것도 벌써 4년 전의 일인 모양으로.
내가 체감하는 시간의 토막은 2년 전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왜 모든 걸 2년 단위로 끊게 됐는지 의아해졌다.
그건 동생이 말한 대로
"장기 기억만이 아니라 단기 기억도 없"어져서
시간의 폭을 그 정도까지 밖에 아우를 수 없어서 인 걸까.
앞 뒤 2년 정도밖에 책임질 수 없는 나.
그 정도를 책임질 수 있는 나.

*

아침에 집을 나서니 바람이 너무 시원했다.
쌀쌀하기까지 했다.
날씨와 하늘에 위안을 얻는 나날로 돌아왔구나,
좋게도 나쁘게도 아침 일찍 눈을 떠서 조금 여유 있게 가다가
역 플랫폼에서 서 선생님을 우연히 만났다.
같이 학교를 향하는데
선생님이 새로 쓰신 영국 기행 책을 주셨다.

이리저리 쓰고 싶은 내용들이 많은데 
바쁘거나 아프거나
(이 익숙한 표현으로 정리되는 것에 흠칫한다)
그러다 보면 쓰고 싶은 것들이 안에 잔뜩 차오르는데 토해내지 못해서 답답하시다고 했다.
요 며칠 인간다운 삶을 유지하기 위해 자야 할 시간에는 방 불을 껐지만
나 또한 같은 상태에 있었으므로,
그러고 보니 또 비슷한 것에 대해 물어봤다.

"선생님 전에 글 쓰는 사람들은 아픈 거(病気)라고 하셨잖아요,
그게 무슨 증상이에요?"
"음... 예를 들어 나무든 뭐든 무언가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고 할 때
그 좋아하는 정도가 뭔가 병적인 것처럼 되기도 한다거나 하잖아-"

페티시즘에 대한 이야기려나,라고 생각하던 중
뭔가 더 이어져야 할 이야기가 학교에 다다름으로써 끊겼기에,
하지만 역시 "좋아하는"이라는 부분에 있어서는
공통된 무언가를 말하시려고 했을까 싶었다.


*


이것도 3년째 지속하고 있는 일상이었으나
자료를 인쇄하고 돌아와 문득
연구실 옆 복도에 시선이 이끌려
누군가가 활짝 열어 놓은 문 밖의 풍경을 처음으로 봤다.

어라, 저 허들을 넘어서 뛰어내리면
자유로워지지 않을까,

연구실이 늘어선 복도의 끝을 향해서
나도 모르게 달렸다.
죽고 싶다는 생각은 아니었다,
내가 상상한 그 가벼움을 내 몸이 재현해주지도 않을 것이고
예전에도 지금도 그러한 행동은 고통스러울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굉장히 오랜만에
그런 돌발적인 행동을 일으키는 공상 같은 감각을 따르다가
문 밖 난간 앞에 이르니 보이는 쭈그려 앉아 있는 아저씨.
갑자기 생의 감각이 확 돌아오면서
관심이 현실 세계로 잡아 끌렸다.

벽하고 마주하고 앉아서
뭐 하시는 거지.
오히려 그가 더 생과 동떨어진 방향을 향하려고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들다가
문득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보이는 하늘.
아, 이런 풍경도 있었구나.


*

이제까지 미처 내가 발견하지 못했던 풍경을 만났을 때의 기쁨
서로가 있는 곳에서 본 그 감상들을 얘기하고 싶은 게 아닐까 싶었다.
내가 보지 못했던 아름다운 것들을 보고 온 얘기를 들려줬으면.

자기 안에 있는 것들을 밖에 내놓아야 하는 그 느낌을 연유로
당신께서는 자신이 글 쓰는 이(物書き)인가 보다고 하셨다.
잘은 모르겠으나,
그러한 부분에 관해서는 나도 결국 써야 하는 사람인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야 삶을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그런 사람.
굳이 써야만 하는 걸까, 라는 온갖 이유를 들어가면서 억누르기도 했지만
그럴 때는 그런대로 다른 형태의 글쓰기는 지속하고 있었으니
지금까지의 시간을 이어올 수 있었던 걸까.

나 자신이 아니라 다른 대상에 대해 쓰던 글들,
하지만 결국 그건 나 자신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상사병(相思病)이라고 생각한다.
굉장히 새삼스럽게도,
상대만이 아니라 서로에 대해서(相)
생각하는 것(思).
사전을 찾아보다가 최근에 새로운 의미와 만난 단어였다.

아마 내가 당신의 글을 계속 읽어온 건,
비슷한 질감과 정도의 멜랑콜리에 대한 공감과 이해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다만, 그것과는 조금 다른 무언가를 모색해볼 요량도 있다.
그래도 이번 생의 목표는 끝까지 살아내는 것이고(生き抜く),
"고개를 젖혀 하늘을 바라보는 움직임"은 언제나
절망보다 희망에 가까웠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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