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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2018.04.14

believe.in.the.best 2018. 4. 14. 18:03

0.
이렇게 해야지,라는 보이지 않는 끈을 놓아버리고
그냥 주절대지 않는 이상 화면과 마주하지 못할 것 같아서
되는 대로, 정말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일기를 써본다.

사실 이것도 원래 오늘 하려 했던 더 큰 일정을 피하다가 돌아온 회피의 장소이다.
오늘은 주말이니까.

1.
올 해 처음으로 화분증에 걸렸다.
일부러 화분증이라 적어봤다만, 꽃가루 알레르기 얘기이다.
친구의 눈알을 꺼내서 씻고 싶다는 표현을 이해하게 되었다.
손에 올려놓고 흔드는 제스쳐의 역설적인 발랄함이란...!

덤으로 눈의 피로 때문인 듯한 어깨 아픔에 괴로워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리고 있었다.
이런 의미에서도 결국 도망갈 곳은 없는 건가?
꽃가루 알레르기는 일본에서 많이 심은 삼나무 등의 꽃가루가 체내에 축적되다가, 
쌓인 양이 어느 정도를 넘어서면 나타나는 증상이다. 
그래서 항상 알레르기가 생기면 일본에 너무 오래 있어서 떠야할 때가 된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다만, 유감스럽게도 당분간 떠날 일은 없어보인다.
그건, 또한 유감스럽게도 앞으로 5년간 내가 무엇을 하고 어디에 있을 지가 전혀 보이지 않아서다.

2.
작년에는 뭐가 그렇게 바빴고 떠올리기 싫어지나 했는데
주말 없이 살아서 그랬군...이라고 굉장히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이것도 저것도 해야하니까 주말 반납이 너무 당연했다.
올 해에도 그러려고 하는 자신을 보고 의식적으로 쉬는 시간을 확보 해야겠다 싶다.
한국에 조금 길게 다녀오고, 쉬는 것의 편함(!)을 누리고 나니 신체감각이 조금 달라졌는지도 모르겠다.

덕분에 그만큼 일상 복귀에 대한 거부감에 몸부림치고 있었건만
돌아오자마자 만개한 벚꽃과 마주하고,
지금은 신록이 너무나 아름다워서 초여름이 가까운 것만 같은 거리의 모습에 나 한 사람의 저항 따위는 압도되었다.
시간의 흐름을 거부할 수 없게 너무나도 빨리 진행되는 색의 향연이라니.
4월의 풍경일 리는 만무하다만 초록색이 너무나 예쁘니 어쩔 수 없네. 내가 나빴네.

2.
그렇게 내가 졌다 쳤다만,
음, 사실 일상에 복귀하면서, 지루하고 관두고 싶은 그 많은 연속성 들 중에도
스스로가 별 의미를 두지 않는 신학기의 피곤함은 새로운 생활의 진통인지도 모르겠다.
이번 학기를 어떻게 끼워맞출 것인가. 시간표에 사각형을 매워가듯
100여일간의 블록 맞추기의 틀을 만드는 중이랄까.
이리 저리 무언가 해야지 싶은 것들은 머릿 속에서 뭉게뭉게 피어나는데
그걸 다 현실화 시킬 수는 없을 것 같고, 무리 해본들 그리 좋지 않다는 것도 작년 한 해 간 배운 셈이다.
차분히, 읽고 또 쓰고 싶은데.
연구실에 혼자 앉아서 무언가 읽는 시간에 마음이 편해진다는 걸 느끼고 나니 더더욱.

3.
여름에 이어 봄도 버텨내야하는 계절이 된 건가.
내 자신이 조금씩 레벨업 하고 있으면 좋겠는데,
그와 함께 사는 게 점점 쉬워지지는 않고 어려워지는 것만 같다.
이건 마치 내 월급 오르는 속도와 물가 오르는 속도의 차이와 같은...,
이라고 말하기엔 난 완전한 사회인은 아니다만.

4.
그래도,
다행이 여러 기회들이 날 찾아오고 적어도 눈 앞의 생활은 짜낼 수 있음에 감사해야지.

出会いと別れの季節, 봄은 만남과 이별의 계절이라고들 한다.
갑작스러운 이별에 발 맞춰 쫓아가지 못하고 있던 중에, 예기치 못한 작별까지 찾아와 머릿 속이 새햐얘졌다.
아니, 온갖 추억들이 머릿 속에 범벅이 되서 파노라마처럼 투영되었다.
그것도 벌써 일주일과 이틀 전의 이야기.
그렇게 싫어하던 신학기도 어떠한 구간을 나누어 새로운 시작을 갖게 해주니 다행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힘내라고 내 등을 떠밀어준거야?

언니가 말했다, 이것도 분명 무슨 의미가 있을 것 같은데 뭔지 잘 모르겠다고.
무슨 의미를 남겨준걸까,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의 의미?
일상 안의 비일상이 가져다 주는 엄청난 전환의 계기?
행복 안에 도사리고 있는 슬픔의 크기,
그로 인해 너무나 둔감했지만 사실은 스스로가 생각한 것보다 너무나 아끼고 사랑했던 마음과 마주하고
뒤늦게 솔직해 졌음에 괴로워 하는 시간?

나도 아직 잘 모르겠다.
하지만 문득, 누군가에게는 아무런 의미를 느끼지 못하는 대상
혹은 의식하지도 못하는 존재일지라도
그로 인해 자신이 살아갈 수 있음을, 그가 자신을 살려내고 있음을 (生かされていること) 알려준 것이 아닐까 싶었다.
우리가 살아 있는 존재라는 것(生き物)을.

안녕, 리카야
앞으로 더 행복해야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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