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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많이 내리는 날.
오랜만에 도예,
이번 달 처음으로 다녀왔다.
계속 바빠서 회수를 다 소화하지 못하고 회비를 기부한다던가...
'이런 걸 만들고 싶다'는 내 나름의 구상을 하고 싶단 생각을 하면서도
가는 것 자체를 우선 목표로 하다보니
당일날 다른 작품을 보고 촉발된 그 때 그 때의 결정으로 무언가를 만들어 온 것 같다.
되돌아보면 어릴 적부터 여러 가지 관심은 많았는데 취미로 배우는 것들에 금방 싫증이 났던 것 같다.
그래서 이번엔 계속 지속해보는 것에 의미가 있는 것 같아서,
벌써 3년 정도 다녔지만
오는 데 급급하고 즐기기 보다 무언가 하는 게 목표가 된 게 아닌 가 싶어서
적어도 컵은 물레로 혼자 만들 수 있게 연습을 해둘까,
올 해가 끝날 때까지만 할까,
라는 생각을 하던 참이었다.
그런데 오늘 와보니 만드는 것 외의 무언가에 대해 다시금 느꼈다.
평소 나의 생활과 다른 공간에서, 만나지 못할 사람들과 같은 자리에 있는 것.
월요일 저녁반 분들은 거의 연령대가 60대 이상인데
대화 내용을 들으면서 다들 이런 얘기를 하는구나,
나이가 들면 잘 안들리고, 잘 안 보이고,
스마트폰을 어떻게 다루는 지 몰라서 아들 딸이랑 아예 같은 기종으로 맞춰서 사고 물어본다,
이런 이야기들이라던지.
누군가의 사고도 누군가의 죽음도 무언가 가볍게 이야기한다.
그건 타인의 생명이나 불행을 가벼이 여긴다기보다,
자신들이 그에 가까워지고 있어서이다.
나이가 들면서 경험하게 되는 일들일지도 모르지만,
그런 걸 그냥 잠자코 듣고 있으면
연령이라기보다 연륜을 느끼게 된다.
아,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구나,
그냥 그렇게 흘려버리면 되겠구나.
그리고 이전에 선생님이 해준 말도 위안이 됬다.
-전에도 했는데 시간이 지나면 또 잊어버려서요...하하
-가끔 하는 거니까 잊어버려도 돼, 나야 매일 하니까 그렇지만
모르면 다시 하면 되지 뭐
즐거우려고 하는 거면서도
잘 해야지, 배운 건데 또 잊어버렸다라는
무언가 면목없는 듯한, 떳떳하지 못한 기분이 들었을 때
그 말이 뭔가 내 안에 막힌 흐름을 탁 트이게 해주는 것 같았다.
연구도, 자꾸 잘 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하다보면 좀 더 나아지겠지,
살아가면 괜찮겠지.
처음 그 동기가 "잘하려고"가 아니라
"해야한다고 생각하니까", "하고 싶어서"였던 것들과 좀 더 살아있는 관계로 지내고 싶다.
자로 잰, 저울질해서 내가 정한 틀에 맞아야만 정답인 게 아니라
여러 인연들과 상황의 만남들이 어우러져 가는 것이었으면 좋겠다.
혼자 아무 말 없이 얘기를 듣다가 조금 웃다가
멍하니 있는 듯이 보이면 선생님이 어김없이 과자를 먹으라고 접시를 가까이 가져다 주는데,
같은 연령대의 대화를 하는 친구가 없어서 신경을 써주는 건지도 모르지만
뜸벙뜸벙 오는 먹는 걸 좋아하는 애가 언제 그만둘 지 모르니 눈치채고 관리를 해주는 건지도 모르겠다.
나도 언제까지 다닐 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이 순간은 나쁘지 않다고 파이를 뜯어 먹으며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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