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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갑과 그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하면, 아직도 목이 메인다.
그는 누구였던걸까, 10년이 지나도 제대로 설명할 수가 없다.
그저,
태어난 날이 같았던 사람.
모두가 너무도 좋아했던 사람.
커다란 장갑을 빌려주었던 사람.
태어나서 처음으로, 사람의 마음이 ‘아름답다’고 생각했던 사람.
그리고, 살아있어주길 바란 사람.
생일이 꼭 같다는 걸 알았을 때,
‘이녀석하고는 뭔가 있을 줄 알았어!’라며 웃었다.
하지만, 내가 숨어있는 사이에 그는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그 이후로 나는, ‘우연’이라는 것에서
어떠한 ‘의미’나 ‘필연’을 찾아내는 것을 피하게 됐다.
‘기분 탓이었던거야. 이거봐, 사라져버렸잖아.’
약간 화가 난 마음을 숨기면서도,
우리가 태어난 여름이 올 때마다, 우리가 걷던 겨울이 올 때마다,
그를 살며시 떠올린다.
그런데 나는 또 다시, 꼭 같은 날에 태어난 사람을 만났다.
‘뭔가 있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런데 태어나서 처음으로, 사람의 마음에 ‘닿아있고 싶다’고 생각했다.
‘우연’과 어떻게 같이 지내면 좋은 건지, 나는 아직 잘 모르겠다.
그런데 시청에서 성명, 주소, 생년월일, 성별을 적고서,
이름과 성별을 빼고 전부 똑같은 종이를 보고는
우연이란 신께서 붙인 ‘지표’가 아닐까하고 생각해버린다.
그리고 지표는, 징검돌처럼 우리 앞에 띄엄띄엄 이어져 간다.
어딜향해 이어져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어디론가 이어져있는 것 같다.
그렇기에,
지표가 이어지는 한, 발끝이 향하는 대로,
손을 잡고, 징검돌을 향해 또 한 걸음.
그리고, 지표를 더듬어 가던 어느 날 돌아보면,
징검돌은 분명, 그 날로부터 하나로 이어진 길이 되어있을거야.
小谷ふみ、『やがて森になる』(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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